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의 마키나락스 투자, 상장보다 중요했던 건?

스타트업의 가치는 어떻게 측정될까요? 누군가는 상장 시점의 기대 수익을, 누군가는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또 어떤 이는 기업의 기술성과 시장성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마키나락스의 초기 투자자이자, 현대자동차의 기업형 벤처 캐피탈(이하 CVC, corporate venture capital)인 제로원벤처스는 조금 다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사에게 포트폴리오 기업이 상장을 통해 가져다줄 자본 수익이 중요하지만, 제로원벤처스는 빠르게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로 현대자동차와의 실질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중요한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나락스는 제로원벤처스의 정답에 가장 가까운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마키나락스는 어떻게 현대자동차그룹의 전략적 투자사 제로원벤처스가 찾던 ‘정답’이 되었을까요? 마키나락스의 시작과 제로원벤처스의 시작을 함께 했던 양우람 책임의 인터뷰를 통해 투자 결정의 순간과 현장에서 증명된 마키나락스의 기술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 팀에서 초기 스타트업과의 협업 및 투자 업무를 맡고 있는 양우람입니다. 2004년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약 10년 동안은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개발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산타페 모델의 오디오, 안테나, 스피커 설계 쪽을 주로 맡았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당시에는 비교적 경직된 개발 문화 속에서 일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오픈 이노베이션이나 외부 협력 같은 개념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그런 흐름을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기획실에서 약 3년간 경영층 지원 업무를 맡았고, 제로원벤처스 팀에 합류해 스타트업 발굴과 전략적 투자 업무를 8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마키나락스 상장보다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 시너지가 우선이었죠” | 제로원벤처스 투자 노트 마키나락스의 초기 투자부터 함께 해온 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 양우람 차장마키나락스의 초기 투자부터 함께 해온 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 양우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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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나락스에 초기 투자한 현대자동차 전략 투자사, 제로원벤처스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제로원벤처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CVC이자,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입니다.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현업 부서와 연결된 실질적인 사업화 기회를 함께 설계합니다. 2017년,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산하에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담할 조직이 신설되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고, 당시 ‘스타트업 육성팀’으로 출발한 이 조직은 곧 ‘제로원(ZER01NE)’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에는 디지털 혁신의 상징인 0과 1, 그리고 Open Innovation의 이니셜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2018년 ‘제로원벤처스’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범해 100억 원 규모의 1호 펀드를 조성했고 2021년에는 800억 원 규모의 2호 펀드를, 올해는 1,1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추가 결성해 3호 펀드 투자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자 활동은 제로원의 세 가지 핵심 기능 중 하나로, 제로원은 ▲컴퍼니 빌더(Company Builder) ▲외부 스타트업과의 협력 ▲펀드 기반 투자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스타트업 발굴은 현대차그룹의 해외 혁신 조직인 현대크래들(Hyundai CRADLE)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텔아비브, 베를린, 싱가포르 등지에 오피스를 두고 운영 중이며, 제로원벤처스와도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글로벌 협업 기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마키나락스 상장보다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 시너지가 우선이었죠” | 제로원벤처스 투자 노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현대크래들 주최로 열린 MIF(Mobility Innovators Forum)에 참가한 마키나락스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현대크래들 주최로 열린 MIF(Mobility Innovators Forum)에 참가한 마키나락스

 

마키나락스 이외에 제로원벤처스의 포트폴리오 기업 중 성공적으로 평가받거나, 상장한 기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로원벤처스가 전략적으로 투자한 주요 포트폴리오 중 하나는 클라우드 기반 로봇 서비스 기업 클로봇(Clobot)입니다. 2018년 1호 펀드 결성 당시 함께 선발된 팀으로, 2023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하며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뤘습니다. 클로봇은 하드웨어보다는 로봇 소프트웨어 제어 및 자율 동작 기술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회사로, 현대차 공장 내 자율 순찰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등 실제 현장 적용 사례를 통해 기술력을 입증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조지아 현대차 전기차 공장에 물류 자동화 솔루션을 공급하며, 복수의 로봇을 통합 제어하는 시스템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클로봇은 현대차그룹의 스마트 팩토리 전환 과정에서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으며, 제로원벤처스가 투자 이후 실질적인 기술 시너지까지 이끌어낸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제로원벤처스는 어떤 기준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나요?

일반적인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가 자본 수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CVC인 제로원벤처스는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실질적인 시너지 창출과 기술 내재화를 더 중요한 가치로 봅니다. 투자로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업 부서와의 연결, PoC 협력, 기술 검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과의 상호작용이 이어집니다. 특히 제조업처럼 신뢰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이미 성과를 낸 파트너가 훨씬 설득력 있는 선택이 되죠. 마키나락스처럼 기술이 내부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 경우는 제로원벤처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투자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교육학의 근접 발달 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개념에서 찾았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할 수 없는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듯, 스타트업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본래 가능성 이상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스타트업의 기술적 인사이트를 학습함으로써 기업의 능력보다 빠르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할 수 있는 지지구조(스캐폴딩, Scaffolding) 역할을 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역량을 함께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제로원벤처스는 이런 구조를 바탕으로 단기 수익보다 기술 내재화와 산업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마키나락스 상장보다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 시너지가 우선이었죠” | 제로원벤처스 투자 노트 2018년 마키나락스가 참가한 현대자동차 제로원데이 현장2018년 마키나락스가 참가한 현대자동차 제로원데이 현장

 

마키나락스에 투자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마키나락스를 처음 알게 된 건 2017년, 제로원벤처스가 1호 펀드 투자사를 모집하던 시기였습니다. 네이버 D2SF의 소개로 윤성호 대표가 직접 지원서를 들고 찾아오셨는데, 정작 회사 이름은 밝힐 수 없어서 본인의 이름으로 기재하셨어요. 이름도 없는 기업을 저희가 선발한 셈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과감한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당시만 해도 산업용 AI(Industrial AI)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윤성호 대표는 제조사와 투자사 모두에게 낯선 주제를 놀랄 만큼 설득력 있게 풀어냈습니다. 기존의 룰 기반 자동화 시스템이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고, 그 대안이 AI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했죠.

 

“마키나락스 상장보다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 시너지가 우선이었죠” | 제로원벤처스 투자 노트, 마키나락스 제로원 오피스 입주 시절 창업 초기 멤버들의 모습마키나락스 제로원 오피스 입주 시절 창업 초기 멤버들의 모습

 

물론 저희도 처음에는 “왜 이걸 굳이 AI로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룰 기반 시스템만으로도 공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키나락스는 ‘멈추지 않는 생산’이 진짜 해결 과제라고 짚었습니다. 특히 설비 고장처럼 사람이 직관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를 AI가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면, 이는 곧 공장의 실질적인 효율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실제로 제조 현장은 겉으로 봤을 땐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어떤 부분이 잘 작동하고 있고, 어떤 부분이 위험 신호인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죠. 그 모호함을 사람의 눈이 아닌 데이터로 감지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AI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신뢰 기반의 의사결정 도구로 다가왔습니다. 마키나락스는 ‘지금 당장 현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구현해 낸 팀이었고, 그 점이 투자의 결정적 이유였어요.

 

지금 시점에서 그때 마키나락스의 투자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지난해 마키나락스의 상장 철회로 일부 투자사들은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로원벤처스의 기준에서 마키나락스는 여전히 ‘정답에 가까운 기업’입니다. 저희는 단순한 기술력보다, 현장에서 바로 작동할 수 있는 실행력과 기술 내재화 가능성을 중요하게 봅니다. 마키나락스는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 드문 팀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자동차와 마키나락스가 함께한 로봇팔 예지보전(RPMS, Robot Predictive Maintenance System) 프로젝트입니다. 생산 라인에서 로봇이 멈추면 수백 대의 생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마키나락스의 AI는 이를 데이터 기반으로 사전에 감지해 예방적 유지보수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유사한 기술을 도입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현대차 규모에 단순 환산하면, 연간 340억 원 이상의 손실 절감 효과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와 진행한 로봇 오프라인 프로그래밍(OLP) 프로젝트 역시 사람이 일일이 설계하던 공정을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자동화한 프로젝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기술들이 연구소가 아닌 실제 생산 라인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키나락스는 단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팀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술력과 신뢰를 동시에 증명하고 있는 팀입니다.

 

자동차 제조, 모빌리티 분야에서 인공지능, 그리고 마키나락스의 기술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자동차 제조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은 단순합니다. 멈추지 않고,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 이를 위해 제조 현장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개선 노력을 이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접근 방식이 바로 4M(Man, Machine, Material, Method)을 최적화하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각 요소를 개선하는 데는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인력(Man)의 교육은 결과와 성과를 정량화하기 어렵고, 설비(Machine)를 새로 들이는 것은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듭니다. 공급망(Material)을 바꾸는 것 또한 리스크와 개선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투자 대비 효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마키나락스 상장보다 ‘현장’에 안착 가능한 기술 시너지가 우선이었죠” | 제로원벤처스 투자 노트, 마키나락스의 초기 투자부터 함께 해온 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의 양우람 책임마키나락스의 초기 투자부터 함께 해온 현대자동차 제로원벤처스의 양우람 책임

 

반면 공정(Method), 즉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제조 공정에서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패턴과 이상 징후를 AI가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공장의 전체 효율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마키나락스의 RPMS 프로젝트와 OLP 프로젝트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여러 로봇 메이커사에서 만든 수천억 원대의 설비를 바꾸지 않고, 기존 장비에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방법(Method)’만 바꾸어 제조 현장의 생산성을 높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인지하기 어려운 패턴과 이상 징후를 AI가 사전에 감지하고,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작업을 보조하는 AI는 제조업 전반에 걸쳐 확장 가능성이 무한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키나락스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시나요?

팔란티어가 복잡한 데이터를 해석해 산업을 변화시키듯, 마키나락스도 산업을 현장에서 읽고 기술로 해석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마키나락스는 단순히 AI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업의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이어가는 실행력을 보여준 팀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에 가깝습니다.

물론 상장은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이정표이며, 마키나락스의 상장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 회사는 이미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기술력을 증명해 왔습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공장에서 AI로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낸 팀, 그리고 그 기술을 만든 사람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마키나락스가 앞으로도 기술로 산업을 움직이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성공한 투자자라고 생각합니다.